베트남 사람들이 발음하기 쉽도록 캐릭터 이름도 변경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도라에몽’의 경우, ‘노비타(のび太, 한국명: 노진구)’는 ‘노비타(Nôbita)’로 그대로 이지만, ‘도라에몽(ドラえもん)’은 ‘도레몽(Đôrêmon)’, ‘시즈카(しずか, 한국명: 신이슬)’는 ‘스카(Xuka)’, ‘스네오(スネ夫, 한국명: 왕비실)’는 ‘세코(Xêko)’, ‘자이언(ジャイアン, 한국명: 만퉁퉁)’은 ‘차이엔(Chaien)’, ‘도라미(ドラミ)’는 ‘도레미(Đôrêmi)’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지진 피해 이후, 부흥은 커녕 국민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연료 부족의 원인이 된 국경 봉쇄는 2016년 2월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봉쇄가 해제된 직후에도 물자의 유통이 바로 회복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다행히도 그 후에 큰 혼란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습니다. 그 후 네팔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8월에 직접 제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고 오려고 합니다.
원문: 일본어 원문 게시일: 2015년 9월 25일 번역자: rion 유대인이 구출된 장소 중 하나.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영사관 건물(카나우스시, 리투아니아) 9월 4일, 리투아니아의 카나우스에서 1940년에 ‘생명의 비자’라는 통과 비자를 발급하여 6,000여명의 유대인을 구한 스기하라 치우네(杉原千畝)를 위한 기념 플레이트가 공개되었다. 위험한 시기에 1940년 8월 28일의 일입니다. 리투아니아가 소련령이 된지 4개월 째. 이미 소련 사회주의 공화국이 된 리투아니아에서는 이전 공화국의 증거가 은폐되고, 영사관과 대사관이 폐쇄되던 시기였습니다. 그 결과, 1939년부터 리투아니아에 지어진 일본 영사관도 문을 닫고, 스기하라 영사는 9월 4일에 리투아니아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리투아니아를 떠나기 전……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은 폴란드를 점령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시작하였습니다. 나치스의 유대인 대량 학살 계획은 폴란드계 유대인의 코앞까지 바짝 다가왔습니다. 이때 […]
원문: 일본어 원문 게시일: 2015년 7월 2일 번역자: rion 이렇게 중국 문화가 아직도 살아있는 나가사키(長崎)에서, 화교들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나가사키 짬뽕의 고안자, 진 헤이준(陳平順, 천핑순)씨의 증손자이며, 나가사키의 유명한 중화요리점 ‘시카이로(四海楼)’의 대표, 진 마사츠구(陳優継)씨가 저술한 책 ‘짬뽕과 나가사키 화교(ちゃんぽんと長崎華僑)’(2009)에는 나가사키 화교의 역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인구의 약 1/6이 중화계인 시대도 있었던 나가사키지만, 일본 에도시대 말인 1858년 안세이(安政 ※번역자주: 일본의 연호)의 개국으로 요코하마(横浜)와 하코다테(函館)가 개항된 후, 나가사키는 일본 유일의 무역항으로써의 특권을 잃게 되었다. 무역의 중심은 동쪽으로 이동되고, 나가사키 화교의 수는 점점 줄어 갔다. 토진야시키(唐人屋敷)는 폐허가 되고, 화재로 인해 불타버렸다. 나가사키의 중국인은 토진야시키 앞바다를 매립하여 만든 조성지 ‘신치(新地)’로 이주하게 되었다. (p. 14) (요코하마 항이 개항되었을 무렵의 그림. 외국 선박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
원문: 일본어 원문 게시일: 2015년 5월 28일 번역자: rion 인도와 중국이라는 거대한 두 나라 사이에 위치한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도대체 얼마나 많은 민족이 얼마나 많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을까요?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2011년 네팔 Central Bureau of Statistics의 자료에 따르면, 민족과 언어 모두 1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공용어’로 사용되는 것이 네팔어입니다. 네팔어는 인도의 힌두어와 같은 데바나가리 문자로 표기합니다. 이런 문자입니다. (네팔 포카라에서 구입한 티셔츠) 가장 유명한 말은, 나마스떼(नमस्ते). ‘안녕하세요’라는 뜻입니다. 상대에 따라 경의를 표하는 ‘나마스카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단냐바드(धन्यवाद)는 ‘감사합니다’라는 의미. 지금은 영어 교육이 활발히 이루어져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말을 사용하지 않고 ‘thank you’라고 한다고 하지만, 네팔어로 감사의 표현은धन्यवाद입니다. […]
원문: 일본어 원문 게시일: 2015년 5월 26일 번역자: rion 2015년 4월 25일, 네팔 중부에서 큰 지진이 발생하였습니다. 막대한 피해가 보고되고 있는 가운데, 수색과 지원이 도착하지 못한 지역도 많기 때문에 아직 전체 피해 규모는 파악되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올 2월에 카트만두 근교에 사는 부바와 아마(네팔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집 근처에서 이런 간판을 발견하였습니다. 데바나가리 문자를 읽지 못하는 저도 일러스트를 보고 지진을 대비하기 위한 계발 간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부바에게 이 간판에 대해 물어보니, ‘네팔에도 지진이 발생한다. 큰 지진은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준비해야 하지만, 일본과 같은 큰 지진은 아직 경험한 적이 없다. 만약 큰 지진이 일어나면 네팔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큰 일이 벌어질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
원문: 일본어 원문 게시일: 2015년 5월 25일 번역자: rion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기에서는 저를 ‘Numa’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이 이름은 네팔 림부족 출신 친구가 저에게 붙여준 이름입니다. 이 블로그를 통해서 네팔에 대해 조금이나마 적어보려고 합니다. 제가 네팔과 만난 것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당시 8살이었던 저는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어머니와 함께 네팔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당시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선하여 자극적인 이문화를 체험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재 네팔의 아버지(부바)와 어머니(아마)로 따르는 부부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1999년 8월의 카트만두) 그 후 저는 대학생이 되었고, 2013년 3월과 2015년 2월에 다시 네팔을 방문하였습니다.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부바와 아마와도 재회하여 어른이 되고 나서 다시 한 번 네팔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2013년 3월의 카트만두) 지금은 네팔에서 구입한 […]
원문: 일본어 원문 게시일: 2015년 5월 25일 번역자: rion 올해도 찾아왔습니다, 일본인회 어머니 날 점심회. 어머니 날은, 세계적으로 5월의 두 번째 일요일이 일반적이지만, 이곳 파라나주 시골마을 일본인회에서는 그 일주일 전이나 일주일 후에 회관에 모여 다함께 축하를 합니다. 올해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셨습니다. 300명은 족히 넘는다고 합니다. 각 테이블을 장식하는 꽃은 종이접기 클래스에서 만든 장미꽃. 연초부터 조금씩 조금씩 준비해 온 자랑스러운 작품. 참고로, 축하라고 하면, ‘Brigadeiro’라는 달달한 과자가 꼭 등장하는 브라질인데, 이 과자를 담는 용기까지 종이접기 클래스에서 만들었습니다. 점심회에서는 산신(오키나와의 현악기)과 다이코(일본 전통북), 합창의 콜라보레이션부터, 합창(‘후루사토[고향]’와 ‘하나와사쿠[꽃은 핀다]), 그리고 다이코 발표까지. 오오다이코(큰 북)는 어머니 날 버전으로 준비하였습니다. 봉오도리(일본 전통 춤)까지 추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제가 부임지에서 참가하는 마지막 ‘어머니 날 점심회’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