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와 다문화 공생(3) 나가사키 차이나타운 리포트 Nagasaki and Multicultural co-existence(3) China town in Nagasaki
원문: 일본어
원문 게시일: 2015년 7월 2일
번역자: rion
이렇게 중국 문화가 아직도 살아있는 나가사키(長崎)에서, 화교들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나가사키 짬뽕의 고안자, 진 헤이준(陳平順, 천핑순)씨의 증손자이며, 나가사키의 유명한 중화요리점 ‘시카이로(四海楼)’의 대표, 진 마사츠구(陳優継)씨가 저술한 책 ‘짬뽕과 나가사키 화교(ちゃんぽんと長崎華僑)’(2009)에는 나가사키 화교의 역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인구의 약 1/6이 중화계인 시대도 있었던 나가사키지만, 일본 에도시대 말인 1858년 안세이(安政 ※번역자주: 일본의 연호)의 개국으로 요코하마(横浜)와 하코다테(函館)가 개항된 후, 나가사키는 일본 유일의 무역항으로써의 특권을 잃게 되었다. 무역의 중심은 동쪽으로 이동되고, 나가사키 화교의 수는 점점 줄어 갔다. 토진야시키(唐人屋敷)는 폐허가 되고, 화재로 인해 불타버렸다. 나가사키의 중국인은 토진야시키 앞바다를 매립하여 만든 조성지 ‘신치(新地)’로 이주하게 되었다. (p. 14)
(요코하마 항이 개항되었을 무렵의 그림. 외국 선박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가사키에 몇 세대에 걸쳐 살아왔지만, 외국 국적을 가진 그들은 ‘국가’라는 틀 속에서 여러 가지 시련을 경험하게 된다.
1894년 청일전쟁 때에는 일본 정부에서 ‘체류 청국인 귀국령’을 발령하여, 화교 중 600명 정도가 본국으로 돌아가고, 나가사키에 남은 화교는 268명이었다. 청일전쟁이 끝난 다음 해부터 서서히 화교 인구는 다시 늘어갔지만, 화교에게 힘든 시대가 시작된다. 에도시대부터 이어온 나가사키 시민과 화교의 역사는 친척과 같은 관계였지만, 화교를 멸칭으로 부르는 일본인이 등장하는 등, 일본인의 중국인관이 바뀌어갔다고 한다.(p. 30)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중국 정부는 나가사키 화교를 중화학교로 전학시키도록 명령하지만, 일본 정부는 일본 검정교과서를 사용하도록 명령하여, 화교 학생들은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인다.
1937년 노구교사건 이후, 중화민국 정부에서 ‘재일 화교 중국 본토 귀국령’을 발령하였다. 당시 나가사키 화교의 심정은 중국 국민당 나가사키시부 집행위원장을 통해 대변되었는데, ‘만약 귀국령이 내려진다고 해도 오랜 세월에 걸쳐 당당하게 구축해온 상권과 재산을 버리고 귀국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다. 만약 귀국하더라도 그 후의 일을 생각하면 나가사키에 남아 있는 것이 더 낫다’. 그러나 같은 해 320여명이 중국으로 귀국하였다.(P. 86)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후, 나가사키 시내에서는 공습이 빈번하게 일어나 중화요리점도 폐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945년 8월 9일에는 원자 폭탄이 투하되어 신치의 차이나타운에서 도망쳐 토진야시키의 건물로 피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가사키 화교 중 피폭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 후, 나가사키의 화교는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필자 진씨의 집안에서 운영하는 ‘시카이로’는 전쟁 중에는 폐업할 수밖에 없었지만, 전쟁이 끝난 후 두 곳에 점포를 내고, 나가사키현의 북부, 사세보시(佐世保市)에도 지점을 세웠다. 화교인 헤이준씨가 발안한 요리 ‘나가사키 짬뽕’은 전쟁 후 다시 일어 서려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P. 94)
현재는 일본인과 결혼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나가사키 화교의 정확한 인구는 파악되고 있지 않다. 나가사키현 인구 약 44만명 중, 유학생을 포함한 2010년 중국 국적 주민의 수는 4,037명이다(일본 입국관리국 사이트 참조).
나가사키 짬뽕, 자오도리(龍踊り, 용춤) 등 여러 중화계 문화가 녹아있는 나가사키. 이국 정서 넘치는 도시는 관광 팸플릿 등에 소개되고, 2014년 나가사키 대학교에는 ‘다문화 사회학부’라는 ‘다문화’를 표방하는 학부가 처음으로 탄생했다. 하지만 나가사키와 외국의 관계는 화교의 역사를 돌아보면 알 수 있듯이, 원만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매우 살기 힘든 시절도 겪어왔다. 이러한 역사를 되돌아보고, 가까운 곳에서 쭉 함께 살아온 화교 분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문헌>
陳優継.「ちゃんぽんと長崎華僑〜美味しい日中文化交流史〜」.長崎新聞新書021, 2009.
彭 雪. 「長崎ランタンフェスティバルと古今中国−中国人観光客誘致への示唆−」. 長崎便り, 2012. (http://shiten.agi.or.jp/201206/201206_80_85.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