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의 다양성(1) 최대 소수 민족이었던 유대인 커뮤니티 Diversity of Lithuania(1)The largest minority ethnic group in the past, Jewish community
원문: 일본어
원문 게시일: 2015년 7월 6일
번역자: rion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앞으로 다시 조금씩 제가 태어나고 자란 리투아니아라는 나라의 다양성에 대해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번에는 옛날 리투아니아의 최대 소수 민족으로, 잊어서는 안 되는 유산을 남겨 준 유대인 커뮤니티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리투아니아의 유대인 역사는 매우 슬프고 끔찍한데, 그 비극성은 통계에서도 나타납니다. 1923년 리투아니아의 유대인 인구는 15만 명(전체의 약 7.6%)을 넘었었지만, 2011년 국세조사에 따르면 3,050명(전체의 약 0.5%)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유대인 인구 감소의 주요 원인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 정치적인 이유 또는 경제적인 이유로 팔레스타인과 미국 등으로 이동한 유대인도 포함됩니다.
- 소련 점령 후 1년 째, 1941년 6월 14일에 다른 리투아니아 사람들과 함께 시베리아로 추방된 유대인입니다. 당시 인구의 1% 정도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 남은 인구의 대부분이 1970년대 이후, 자의 또는 타의로 이스라엘로 떠났습니다.
- 그러나 가장 유대인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홀로코스트’라고 불리는 대량 학살입니다. 나치스 독일 점령 시대(1941-1944)에 수많은 유대인들이 조직적인 계획(systematically)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그 결과 90%(!)의 유대인이 홀로코스트의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강제 수용소를 경험하고 살아남은 유대인 중에 소비에트 연방의 리투아니아로 돌아온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한편, 유대인을 구하기 위해 분투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열방의 의인(righteous among the nations)’이라고 불리는데, 죽음의 위기로부터 유대인을 구한 것은 877명의 리투아니아인들이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비자를 발급하여 유대인을 구한 영사 2명도 있었습니다. 그 인물은 바로, 스기하라 지우네(杉原千畝, 일본)와 얀 스바르텐덱(Jan Zwartendijk, 네덜란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