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의 다양성(2) 리투아니아의 독립과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유대인 Diversity of Lithuania(2) Independence of Lithuania and Jewish community in the pre-WW2
원문: 일본어
원문 게시일: 2015년 7월 6일
번역자: rion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리투아니아의 소수 민족(ethnic minority) 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이 유대인 커뮤니티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한편, 독립된 리투아니아 시대(1918-1940)에는 유대인 문화가 번성하였습니다. 수도 빌뉴스는 폴란드에게 침략당하여 1919년부터 1939년까지 폴란드령으로 지배를 받았지만, 그 시기에도 빌뉴스의 유복한 유대인의 유산은 계속해서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1926년부터 리투아니아는 일당제(*단일 정당제)를 채택하였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유대인이 적극적으로 중앙 정부에 참여할 수는 없게 되었지만, 다른 유럽 국가와는 달리 문화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자유로웠으며, 사회로부터 단절되지 않고 리투아니아 사회 속에서 공생할 수 있었습니다.
리투아니아 유대인의 대부분이 사용하던 언어는 러시아어, 이디시어, 리투아니아어로, 총 세 개의 언어였습니다. 이디시어 신문도 출판되어 지역에 따라서는 이디시어로 표기한 가게 간판이나 거리 표지판도 있었다고 합니다.
14세기 전반 이후, 리투아니아 영토에 채류한 유대인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자료는 거의 없는 듯 하지만, 1388년 뷔타우타스 대왕이 ‘유대인에 대한 특권’을 선언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 선언에 따르면, 유대인 커뮤니티는 종교적, 문화적 자치권이 확보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대적 신앙의 자유는 리투아니아 대공국 시대에도, 폴란드 리투아니아 공화국 시대에도 합법적으로 확보되어 왔습니다.
1918년 리투아니아는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하고, 민족 국가(nation state)가 되었는데, 이때 유대인은 적극적으로 사회적 활동을 하였습니다. 리투아니아 독립을 위해 적어도 500여명의 유대인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