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장소에서 스기하라 치우네(杉原千畝) 기념 플레이트 공개
원문: 일본어
원문 게시일: 2015년 9월 25일
번역자: rion
9월 4일, 리투아니아의 카나우스에서 1940년에 ‘생명의 비자’라는 통과 비자를 발급하여 6,000여명의 유대인을 구한 스기하라 치우네(杉原千畝)를 위한 기념 플레이트가 공개되었다.
위험한 시기에
1940년 8월 28일의 일입니다. 리투아니아가 소련령이 된지 4개월 째. 이미 소련 사회주의 공화국이 된 리투아니아에서는 이전 공화국의 증거가 은폐되고, 영사관과 대사관이 폐쇄되던 시기였습니다. 그 결과, 1939년부터 리투아니아에 지어진 일본 영사관도 문을 닫고, 스기하라 영사는 9월 4일에 리투아니아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리투아니아를 떠나기 전……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은 폴란드를 점령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시작하였습니다. 나치스의 유대인 대량 학살 계획은 폴란드계 유대인의 코앞까지 바짝 다가왔습니다. 이때 죽음을 피하려던 유대인 중 난민이 되어 리투아니아로 도망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리투아니아의 운명도 불안정한 시기였습니다. 같은해 10월 10일, 적군은 리투아니아로 들어왔고, 리투아니아의 붕괴는 시간 문제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1941년 6월에 리투아니아도 나치 독일에 희생되게 됩니다.
1940년 6월 14일, 리투아니아가 소련에 점령되자, 대사관은 일제히 문을 닫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불안정한 시기에 유대인 난민의 절망적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외교관이 있었는데, 바로 스기하라 영사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나치 독일과 함께 추축국이라는 군사동맹의 가맹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에 대한 위협을 이해한 스기하라 영사는 통과 비자를 발급하고, 유대인을 구하기로 하였습니다. 일본 영사관이 문을 닫은 후에도 호텔에 머물던 스기하라 영사는 ‘생명의 비자’를 계속해서 발급하였습니다. 9월 4일 카우나스 역에서 그 비자를 계속 발급하였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습니다. 스기하라 영사는 6,000여명의 생명을 구하였습니다.
리투아니아의 기념행사
이를 기념하여 75년 후,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에서 스기하라 치우네의 기념 플레이트가 공개되었습니다. 9월 4일 아침, 메트로폴리스 호텔 앞과 카우나스 역에서 플레이트 공개 행사가 진행되고, 스기하라 치우네의 ‘생명의 비자’ 덕분에 나치스의 대학살로부터 살아남은 유대인(Nina Admoni와 Marcel Weyland), 일본 대사와 대사관 대표, 외무부 장관, 국회의원 등이 참가하였습니다. 국제적인 현대 무용단 ‘AURA’의 ‘Turned’이라는 공연도 있었습니다. 역 안에서도 전시가 이루어졌습니다. 스기하라 치우네와 같은 영웅의 유산을 언제까지나 기억했으면 합니다.
링크
*75주년 기념행사에 관한 기사(일본어)
*NHK뉴스
*오다 기리에의 현대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