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의 시미(청명제, 清明祭)를 소개합니다
원문: 일본어
원문 게시일: 2016년 6월 18일
번역자: rion
이번에는 오키나와(沖縄)의 ‘시미’에 대해 일반 가정의 모습을 소개하며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이나 생각 등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오키나와의 시미(清明祭)는 중국에서 전래된 문화입니다. 한국의 명절과 같이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오키나와의 중요한 연례행사이기도 합니다.
(참조) 那覇市歴史博物館デジタルギャラリー ‘가네시로가(金城家)의 시미’(일본어 페이지)
‘시미’는 24절기 중 하나인 “청명(清明)”에 해당됩니다.
매년 4월이 되면 가족들이 스케줄을 맞추어 모입니다.
친척들을 포함한 가족들(문중[門中]이라고 합니다)은 일주일 전부터 모이는데, 각 가정의 대표들이 조상님의 산소를 찾아 성묘를 합니다. 이를 오키나와 방언으로 ‘가미우시미’라고 합니다. 필요할 때에는 산소를 정비하기도 합니다. ‘가미우시미’ 때는 문중의 초대 조상님 뿐만아니라 그 이전의 조상님들께 먼저 예를 올리고, 사전에 감사와 기원을 전한다고 합니다. 이 행사에는 문중의 대표들만이 참가하기 때문에 저는 참가한 적이 없습니다. ‘가미우시미’를 올리기 전부터 어른들이 분주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아이들은 소풍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시미’를 맞이합니다.
아래가 2016년 저희 집의 시미에 대한 보고입니다.
(1) 4월 말 토요일, 장보기
저희 부모님은 맞벌이로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슈퍼에서 판매되는 조리된 음식들이 큰 도움이 됩니다.
이 날 사온 식재료들 입니다.
(2) 당일 아침, 준비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이른 시간부터 부엌에서 요리를 하시는 어머니.
거실에서는 아버지가 구부정하게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습니다.
완성된 요리는 찬합에 가지런히 담습니다.
튀김이나 조림 중심으로 금방 질려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치킨이 어묵이나 튀김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찬합에 담긴 음식들은 가족들의 늦은 점심 식사이기도 해서 흰 떡 대신에 주먹밥이 들어있습니다.
어머니: ‘음식 다 됐다~’
아버지: ‘가자!’
그제서야 일어난 남동생까지 가족 모두가 모여, 드디어 출발입니다.
(3) 문중 산소에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문중 산소’.
이 작은 언덕에는 많은 ‘문중 산소’가 있습니다.
주변 지역에 옛날부터 살아오신 분들의 산소가 모여있는 곳입니다.
(오른쪽 사진은 산소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촬영)
※우토토(오키나와 방언, 두손을 모아 조상님들께 예를 올리는 것)의 장면을 촬영한 친구의 사진을 허락을 받고 빌려왔습니다.
“…저희는 오남(五男) 일가입니다. 조상님의 보살핌으로 작년 한 해도 무사히 보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올 한해도…”와 같은 내용을 (우치나구치[오키나와 방언]로) 빌고 있습니다.
(4) 다른 마을에 있는 문중 산소로 이동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에 있는 더 윗대의 조상님 산소로 향했습니다. ‘시미’ 때는 이 두 곳의 산소에 들러 성묘를 한 뒤, 바다나 공원에 가서 가족들이 함께 준비한 음식들을 먹는 것이 일반적인 일정입니다.
두 번째로 찾은 산소는 이런 장소에 있습니다.
십수 년 전에 정비된 이 곳은 주차 공간과 경사가 완만한 계단, 벤치 등이 설치되어 연세가 있으신 분들도 찾기 편한 곳이 되었습니다.
(5) 성묘의 포인트
먼저 선향(오키나와 특유의 넓적한 선향)을 올리고, 술을 산소의 입구쪽에 뿌립니다. 그리고 준비해간 찬합(준비한 음식)을 펼칩니다. 음식을 올릴 때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찬합에 가지런히 담긴 음식을 하나 꺼내어 그 위에 올립니다. 이는 조상님이 드시기 편하게 하기 위한 배려가 아닐까요? 주먹밥도 꺼내어 랩을 벗깁니다. 한 번 꺼낸 음식은 두 번째 산소로 이동하기 전에 따로 준비한 음식과 교체합니다.
선향과 지전(紙銭, 저승에서 사용하는 돈)을 태우고(오키나와 방언으로는 ‘우치카비’ 한다고 말합니다), 조상님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올 한해도 무사히 지낼 수 있도록 기원한 후, 연기가 잦아들면 찬합과 술 등을 정리합니다.
(6) 오래된 묘적(墓跡)
그리고 같은 산의 반대편에 있는 다른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갑니다.
산의 사면에 조금 움푹 꺼진 듯한 곳에 묘적(墓跡)이 있는데, 이 곳에서도 공양을 드립니다. 이 묘적에 대해서는 아버지께서도 자세히 알지 못하셨습니다.
바람이 세게 불어도 단 몇 초 만에 불을 붙일 수 있는 가스버너가 큰 활약!
하지만 지전을 다 태워버리는 것이 왠지 망설여졌습니다.
이곳은 모기가 많기 때문에 어머니와 남동생은 재빨리 차로 돌아가버렸습니다.
선향과 지전을 태우는 불이 좀처럼 꺼지지 않자 아버지가 담배를 태우기 시작하셨는데, 갑자기 무언가를 떠올리신 듯이
‘옛날에는 한군데 더 갔었던 것 같은데…’라고 중얼거리셨습니다.
차로 30분 정도 이동하여 온 이 곳은 옛날에 조상님들이 살아계셨던 땅입니다. 기록이 남아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족 연례행사로 성묘를 하는 것은 조상님들의 긴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후세의 가족들은 어떤 땅에서 살게 될까, 지금의 나처럼 산소 앞에서 두손을 모으고 조상님들의 발자취를 상상하며 설레여할까…. 저는 이 땅에 뿌리내린 가족의 역사에 대해 생각하면서 혼자 들떠 있었습니다.
(7) 우산데(공양드린 음식)를 먹는 늦은 점심
마지막으로 점심을 먹기 위해 바다로 향했습니다. 공양을 드린 음식을 정리할 때에는 ‘우산데사비라’라고 말하는데, ‘우산데’는 자손들인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 먹습니다. 바닷가에는 우리 가족 이외에도 늦은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다른 가족들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