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현 모 지역사 편찬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전편)
원문: 일본어
원문 게시일: 2017년 5월 16일
번역자: rion
airi입니다. 저는 지금 일본 오키나와현(沖縄県)의 한 지역사 편찬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일을 하면서 느끼는 것들에 대해 여러분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오키나와 전투의 경위(*링크는 일본어 페이지)
“사람은 먼저 어디부터 썩는다고 생각해? …하하하(웃음).”
이는 히어링 조사에 응해주신 한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이다.
오키나와 전투 말기, 그저 파괴되어 가고 있던 오키나와 본도 남부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였다. 태어나고 자란 마을에는 미군 탱크가 들어와 있었다. 미군 병사가 본넷 위에 앉아 담배를 피고 있는 모습을 무덤 속에서 지켜봤다(주1). 다리를 다쳐서 도망치지 못하게 되자 친척 가족들은 나를 두고 가버렸다. 연로하신 할아버지가 다른 무덤에 계셨지만 구하러 가지 못했다. 전쟁터에서 수용소로 이송되면서 남부에서 북부로 갔다. 식량은 부족하고 모기를 매개로 한 전염병으로 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 죽어 나갔다. 이는 체험담의 극히 일부분이다. 세 번정도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직 말씀하고 싶은 일들이 남아 있으시다고.
(주1 오키나와의 무덤은 분봉이 없는 납골당 형식으로, 석재로 지어진 집 모양의 형태가 일반적이다.)
삶의 터전이 지옥으로 변한 72년전. 광기가 어린 미소를 띄우며 당시를 회상하는 사람들을 나는 몇 번인가 본적이 있다. 그 모습을 ‘상냥하고 다정하신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말하는 것은(지금까지 그래왔을지도 모르지만) 더 이상 힘든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당시 20세였던 사람이 2017년인 올해 92세가 된다. 이제 그만 잊게 해달라, 고 사실은 말하고 싶으실지도 모른다. 말씀은 안 하시지만, 히어링 조사를 의뢰하러 가면 그런 분위기가 흐른다.
――뭘 위해서? 왜 이제와서 묻는거지?
“아, 그러니까, 두 지역이 합병되면서 지역사 편찬 사업으로 전쟁편을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전쟁 체험에 관한 기록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당시의 마을 모습에 대해 들려주셨으면 해서. 어르신들이 건강하실 때 여쭤봐야지 하고. 그리고 한분 한분의 체험은 다 다를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많은 분들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합니다. 어떠신가요?”
――…그래? 나는 별로 기억하는 게 없어서…이런거…이야기도 그렇게 잘 하지도 못하고.
대화가 잘 통하고 있는지, 잘 전해지고 있는지, 확인하면서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다시 반복되는 경우도 많다. 물론 동의를 얻은 분들께만 이야기를 듣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좌담회 형식으로 당시를 떠올리며 하시는 이야기를 들은 후, 다시 찾아가 질문하며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듣는다.
이야기를 듣다보면 뿔뿔이 흩어져 있던 기억들이 정리되면서 다시 다른 기억들이 끓어오른다. 기록하는 쪽은 내용 확인을 위해 되묻고, 말하는 쪽은 체험을 객관적으로 다시 파악해 나간다. 가끔씩 “이야기 해보니 좋았다. 또 언제든지 찾아와 달라”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내 마음이 구원된 느낌이다.
“이야기를 잘 하지 못한다”는 답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개인적으로 전쟁 체험은 텔레비전이나 신문, 학교의 평화 강연 등 ‘사람들 앞에서 하는 이야기’라는 인상이 강했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건 좀…이라며, 부담스러워 하시며 거절하시는 경우도 많다. 개인 정보가 공개되는 것을 걱정하시는 분들도 많다(※서적에 게재되는 경우에는 동의서를 준비한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내 부모님 세대(50대 중반)도 경험했다는 ‘호겐후다(方言札, 방언찰)’에 관한 것이다. 당시 생활 언어는 “시마구투바(*‘섬 말’이라는 뜻의 오키나와 말)였다. 생활 언어는 학교 교육 현장에서 금지되고 표준어 사용을 강요받았다. 그러나 생활 속 단어와 표현은 매끄럽게 표준어로 전환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전환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생각의 흐름이 막혀버릴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오키나와 전투 체험을 섬 말로 기록한 자료는 많지 않다. 히어링 조사를 하고 있는 나는 오키나와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사실 섬 말은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체험자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닐까…하고 느끼는 경우도 많다.(죄책감과 갈등하는 듯한 복잡한 기분이다.)
후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