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손자가 전하는 오키나와 전투’를 회고하며① 연극을 제작하고 연기하게 된 계기 Reflecting my experience of a play ” Story of the Battle of Okinawa Retold by the Grandchildren” (1): How it started
원문: 일본어
원문 게시일: 2016년 6월 13일
번역자: rion
안녕하세요. 일본 오키나와의airi입니다.
오키나와 전투를 구전하는 활동에 대한 블로그를 쓴 후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번에는 이러한 활동의 출발점인 “연극: 손자가 전하는 오키나와 전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써보려고 합니다.
제가 대학교 2학년이었던 2011년 말, ‘손자가 전하는 오키나와 전투’라는 제목으로 30분정도의 연극을 발표하였습니다.
각본은 제작에 참가해준 친구들과 함께 반년 정도 논의를 통해 써 나갔는데, 실제 등장 인물과 구성이 확정된 것은 발표 이주 전이었습니다. 게다가 전혀 연기 경험이 없는 제가 주인공인 내용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메인 테마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동안 명확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저를 지켜보던 친구들이 ‘그냥 있는 그대로의airi를 보여주자!’고 결정을 내려 준 것입니다.
연극의 구성은
(1) 학생 가이드가 관광객들에게 오키나와 전투에 대해 설명
(2) 가이드를 하던 중, 밭일을 하던 할머니께 제지 당함
(3) 가이드 선배가 “더 인상에 남는 그림”이 필요하다고 조언
(4) 집에 돌아가 아버지께 오키나와 옛 지명 등을 배우면서 생각이 바뀜
(5) 전쟁 체험자가 정말로 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
(6) 할아버지의 그림(약 40장) 슬라이드 쇼와 본인 영상 ※연극 종료 후 그림 전시
저는 ‘저 자신’을 연기하였기 때문에 여러 가지 혼란스러운 점이 있었지만, 연극의 구성은 대략적으로 이런 흐름입니다.
2016년을 살아가는 지금의 제가 이 연극을 되돌아 보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들과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깨닫게 됩니다. 이런 생각들은 한 블로그 안에 모두 담을 수 없기 때문에 네 번에 나누어 적어보려고 합니다.
① 계기
② 제작과정
③ 관계자들의 의견
④ 연극에 대한 반응과 그 후 활동
이번에는 먼저 연극을 제작하게 된 ①계기에 대해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계기가 된 스케치북.
할아버지는 전쟁 전부터 오키나와 전투, 그리고 전쟁 직후의 기억을 스케치북에 그림으로 그리셨습니다.
할아버지가 2005년 쯤에 그리신 그림은 스케치북 약 40장 정도인데, 전쟁 체험에 대한 십여 장의 그림과 전쟁 전(오키나와 전투 직전)의 그림이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 전쟁 직후의 생활에 대한 그림이 조금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몇 번인가 취재 요청에 응하신 적도 있다고 하십니다.
저는 대학교 때 교육학부에 진학하여 평화에 대해 생각하고 배울 수 있는 강의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필수 과목과 강의 시간이 겹치거나 레벨이 높은 어려운 내용의 강의가 많아 실제로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 즈음, 교직 관련 수업에서 평화 교육과 관련된 활동을 하시는 전직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신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무작정 할아버지의 그림 사본을 들고 교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을 어떻게든 널리 알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교수님께 상의를 드렸습니다. 그 후 교수님은 현 내의 초등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평화 학습 수업이나 가이드 분들을 소개해 주시고, 전쟁에 대한 기억을 전하는 활동을 하시는 분께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 주셨습니다.
‘왜 나는 할아버지의 그림을 알리고 싶었을까?’ 제가 아직 어렸을 때, 할아버지는 약주를 드시면 단편적인 기억을 저에게 들려 주셨습니다. 초등학교에서는 평화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러나 왜 사람들이 전쟁을 하는지 어린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어른이 되면 ‘전쟁은 큰 잘못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사람들 앞에서 할아버지의 그림에 대해 설명하려고 해도 말문이 막혔습니다. 저는 그저 눈물을 흘리며, 제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그 때부터 궁금한 것이나 모르는 것이 있으면 할아버지 댁을 찾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림 뿐만 아니라 수기에 체험을 기록해 두셨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려주시며,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씀과 함께 수기를 읽게 해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가족들에게조차 이 수기에 대한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수기에는 할아버지가 가끔씩 들려 주셨던 ‘전쟁터의 그 장면’은 물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쟁 중의 일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할아버지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도 쓰여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전혀 내색하지 않으시던 할아버지의 감정적인 부분을 수기를 읽으며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슬픔’이라고 단언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었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수기에는 지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지명이 많이 등장하였습니다. 그 지명에 대해 조사하면서 차차 할아버지의 체험을 입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고, 저 자신도 아주 농밀한 체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키나와 전투에 관한 책을 읽고 가이드 분들께 배우면서 ‘오키나와 전투’의 역사를 다각적으로 배워갔습니다.
이 배움의 과정은 개인사(오럴 히스토리)에서 시작되어 전체적인 역사로 전개되어 갔습니다. 이 과정을 객관적으로 되돌아 보면, 매너리즘에 빠져들고 있는 평화 교육에 조금이나마 유효한 방법을 제안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저 자신’를 연기한 것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며 미래에 대해 생각해 나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