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필드노트(2) 히사마츠(久松) 방언과 어로, 그리고 할아버지 Fieldnotes 2 Miyako Island
원문: 일본어
원문 게시일: 2014년 3월 5일
번역자: rion
왼쪽 사진 안 쪽에 보이는 것이 이라부지마(伊良部島)이다. 내년(2015년)이면 이라부지마와 미야코지마(宮古島)를 잇는 다리가 개통된다. 바다 위에 다리가 걸린 풍경을 예상해서인지, 미야코지마 중심지에서 히사마츠(久松)로 이어진 도로 주변에는 새로운 아파트 등, 콘크리트 건물들이 현저하게 늘어나고 있다.
큰 길을 벗어나 바닷가를 걷고 있으니 오늘도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 사진에 찍힌 두 할아버지는 히사마츠가 아닌 중심가에 살고 있는데, 시간이 나면 서로 불러내어 낚시를 하러 이 곳에 오신다고 한다. ‘뭐가 잡히나요?’라고 물으니, ‘사요리(학꽁치), 요시나가 사요리(※번역자주: 요시나가 사유리〔吉永小百合〕, 일본의 유명한 여배우이자 가수)’라고 아재개그를 날리시며 ‘하하하’하고 큰 소리로 웃으신다. 이라부지마를 바라보며 하루 종일 바다를 마주하고 앉아, 평온한 바람과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하는 낚시. 이러한 미야코지마의 생활도 있다.
한편, 하리 축제(해신제, 인샤〔海人, 해인. 미야코 방언〕 축제)에서 만난, 가늘고 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보트 옆에 서 계신 할아버지께 말을 걸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우리 아버지와 같은 연세(83세)이신 할아버지. 지금은 가끔씩 당신이 드실 만큼 고기를 잡는다고 하신다. 이번 달은 사토키비(사탕수수) 수확으로 바쁘셔서 사바니(가늘고 긴 나무배) 손질도 못하셨다고. 옛날에는 이 배를 타고 나가서 그물로 많은 고기를 잡았지. 그물을 당기면 어찌나 무거운지, 라며 고기 잡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내가 히사마츠 방언을 쓰시나요? 라고 물으니, 히사마츠 방언을 사용하신다고 한다. 나는 조금 긴장하며, 자녀분들과 손자분들은 히사마츠 방언을 할 줄 아나요? 하고 물으니, 할아버지는 순간 표정이 굳어지며 한숨을 쉬셨다.
국민학교(※번역자주: 1941년 국민학교령에 의해 일본에 설립된 초등 교육과 전기 중등 교육을 실시하던 학교. 군국주의를 강조하던 황국신민화교육의 산물. 1947년에 폐지) 때는 호겐후다(方言札, 방언찰. 오키나와 말을 쓰는 학생들을 체벌하던 제도)가 있어서 아이들은 자신의 호겐후다를 다른 친구에게 줘버려야한다는 생각으로, 일부러 발을 밟아 ‘아갓!(아야!, 아프다는 뜻의 방언)’이라고 말하게 하고, ‘아, 사투리 썼다’하고 호겐후다를 건냈지. 할아버지는 내 발을 밟으시며 상황을 재연해 보이셨다. ‘그리고 자식들과 손자들은 나하(那覇)에 살고 있고, 히사마츠 방언은 쓰지 않아’라고 말씀하셨다.
밟힌 발은 아팠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친구의 발을 일부러 밟은 할아버지가 더 아프시지 않았을까. 히사마츠 방언, 미야코 방언, 류큐(琉球) 방언을 써서는 안 된다고, 국가에 의해 통제받았던 역사. 할아버지의 가슴 속에는 아직까지 그 아픔과 한이 남아있다.
나의 끊이지 않는 질문에도 열심히 답해주시는 할아버지. 하지만 가끔씩 할아버지의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나. 할아버지의 ‘표준어(공용어)’는 알아듣겠지만, 가끔씩 목소리가 흐릿하고 분명하지 않다. 이는 히사마츠 방언 화자의 특징이라고 히사마츠 옆 마을에 사는 사람이 알려주었다.
할아버지의 얼굴은 햇빛에 그을려 빛나고 있었다. 나무의 나이테와 비교하면 실례가 될지도 모르지만, 연륜이 묻어나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나는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허락을 구했다. ‘좋지’.
‘내일 또 와’라고 말씀해주신 할아버지. 내일은 도쿄(東京)로 돌아가는 날이었지만, 왠지 다시 와야만 할 것 같았다.